1.뜨거운 온돌, 마을의 심장을 깨우다
충남 서천의 한적한 마을에서는 매년 가을이 다가오면 전통의 온기를 되살리는 이색 축제가 열린다. 구들장 뜯고 고사 지내는 날”
충남 서천 전통 온돌문화 축제에 대해서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이름하여 ‘온돌문화 축제’, 이 행사는 단순한 체험을 넘어 우리 전통 건축과 난방 문화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살아있는 민속학교다. 그 중심에는 바로 ‘구들’이 있다. 온돌은 외국에는 없는 독특한 난방 방식으로, 집 안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방바닥 아래로 열기를 보내는 구조다.
이 축제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구들장을 직접 뜯는 퍼포먼스다. 구들은 단순한 바닥이 아니라 수십 년을 버텨온 마을의 열기이고, 세월이 쌓인 삶의 흔적이다. 축제 전날, 마을 장정들과 구들 전문가들이 모여 낡은 초가집 하나를 선정해 그곳의 구들장을 해체한다. 손으로 벽을 허물고 흙을 퍼내며 조심스럽게 돌을 들어내는 과정은 마치 땅속에 묻힌 시간을 다시 꺼내는 작업 같다.
구들장 아래 숯처럼 새까맣게 그을린 흔적은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겨울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걸 보는 방문객들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 할머니가 살아온 집’, ‘옛날 추억의 겨울방’ 같은 감성적 공감을 느낀다. 전통문화에 대한 책이나 전시가 줄 수 없는 ‘체온 있는 경험’이 바로 이 구들 해체 장면에 담겨 있다.
축제에 참여한 이들은 구들의 구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다. 아궁이에서 시작된 불이 연도를 타고 돌아나가면서 방을 데우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전문가의 말에 아이들도 집중한다. 특히 불길이 지나는 통로의 각도, 돌을 쌓는 순서, 굴뚝까지 이어지는 설계 원리를 듣다 보면 조상들의 지혜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단순한 바닥이 아닌,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든 난방 과학인 셈이다.
이렇게 해체한 구들은 다시 쌓는 과정도 체험할 수 있다. 참여자들이 직접 불붙인 장작을 넣고 연기를 피워보는 ‘온돌 데우기’ 시연은 구들의 생명력을 눈앞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도 넘쳐 흐른다. 서천의 온돌문화 축제는 단순한 전통 재현이 아니라, 한겨울에도 따뜻한 마루 위에서 나눴던 정과 이야기를 복원하는 시간이다.
2.구들 위에서 지내는 고사, 그 깊은 뜻
온돌문화 축제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하이라이트는 바로 ‘구들고사’다. 구들고사는 새롭게 구들을 놓기 전, 또는 오래된 온돌을 해체하고 나서 고마움과 안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전통 의식이다. 이 의식은 단순히 형식적인 행사가 아니라, 구들을 ‘살아 있는 존재’처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고사 당일 아침, 마을 어르신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구들 해체 현장 앞에 모인다. 짚으로 만든 제기(祭器)에 정성껏 준비한 제물들이 차려지고, 막걸리 한 잔과 시루떡, 삶은 돼지고기 등이 놓인다. 제물은 주로 구들장 위에서 따뜻한 밥과 국을 먹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들로 구성된다. 그 앞에서 마을 대표 어르신이 축문을 읽는다.
“구들의 덕분으로 지난 겨울 따뜻하게 지냈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게, 무탈하게 지내게 해주십시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인간과 자연, 공간과 기억이 함께 얽혀 있다.
이 구들고사는 어르신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와 외지인에게도 큰 인상을 준다. 많은 방문객들이 고사에 참여하며 자신이 잊고 있던 고향집의 추억이나 할머니의 품 같은 따뜻함을 되새긴다. 조상들은 왜 방바닥에 불을 지폈을까? 왜 뜨거운 아랫목에서 이불 속 이야기가 시작됐을까? 구들은 단지 난방 수단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잇는 정서의 매개체였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고사 후에는 제사 음식들을 함께 나누며 마을 주민들과 관람객들이 한데 어울린다. 특히 이웃이 이웃에게 떡을 나누고 막걸리를 따르며 웃는 모습은, 잊혔던 공동체의 온기를 되살린다. 온돌문화 축제에서의 구들고사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의식이 아니라,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공감과 연결의 장’이다.
3. 온돌문화 축제를 더욱 따뜻하게 즐기는 법
서천의 온돌문화 축제는 매년 가을, 주로 10월 중순에서 말 사이에 열리며, 축제 장소는 ‘서천 전통문화마을’ 또는 ‘한산면 구들체험관’ 인근에서 진행된다. 축제는 2~3일간 열리며, 구들 체험부터 전통놀이, 고택 투어, 전통 음식 나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체험 프로그램 예약이 필수다. 구들 해체나 쌓기 체험, 고사 참여 등은 선착순으로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나 지역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구들 위 전래동화 듣기’, ‘아궁이 쿠킹 체험’ 같은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다.
또한 축제장 주변에서는 온돌방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체험 민박도 함께 운영된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진짜 황토방, 아궁이에 직접 불을 지펴 따뜻해진 아랫목에서의 하룻밤은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 된다.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숙소이기 때문에 시골 인심 가득한 식사와 정겨운 대화도 덤으로 얻게 된다.
축제장 먹거리 부스에서는 ‘아궁이에서 구운 군고구마’, ‘직접 데운 누룽지차’, ‘구들 위에 익힌 찰떡’ 등 온돌의 원리를 활용한 음식들을 판매한다. 특히 어르신들 사이에선 이 음식이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린다며 호응이 크고, 젊은 세대에겐 인스타에 올릴 만한 전통 푸드 콘텐츠로도 인기가 많다.
온돌문화 축제를 찾았다면 인근 명소인 서천 한산모시관, 장항 송림산림욕장, 금강하구둑 철새탐조대 등을 연계해 방문하면 하루 여행 코스가 더욱 알차다. 자연과 전통, 사람과 감성이 어우러진 이 축제는, 한 번의 방문으로도 오랫동안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