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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영화제를?” – 고창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

by 오늘의 정책 2025. 7. 28.

1. 동학의 숨결이 깃든 마을, 다큐멘터리를 품다


전라북도 고창, 겉으로 보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지만 그 속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이야기가 깊이 깃들어 있다. 오늘은 “마을에서 영화제를?” – 고창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에 대해 알려들릴 예정입니다.

“마을에서 영화제를?” – 고창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
“마을에서 영화제를?” – 고창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

 

바로 동학농민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학마을'. 이 마을에서는 매년 독특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영화관도, 대형 스크린도 없지만,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관객을 맞이하는 ‘고창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가 그것이다. 이 축제는 마을 자체가 상영관이자 무대가 되고,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관객이자 해설자가 되는 특별한 영화제다.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의 핵심은 '이야기'에 있다. 다큐멘터리는 화려한 CG도, 스타 배우도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심에 가깝다. 이 마을에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다큐는 곧 마을 사람들의 삶과 닮아있고, 그들의 기억과 공명한다. 동학의 정신처럼, 현실의 억압과 불의에 맞섰던 사람들의 이야기, 공동체와 연대의 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 같은 가치는 오늘날 이곳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도 고스란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마을 회관 앞 공터, 폐교가 된 분교 교실, 동네 사랑방, 심지어 논두렁 옆까지도 스크린이 된다. 돗자리를 깔고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면, 조명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간이 발전기를 돌리며 상영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 같다. 상영 후에는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지고, 때로는 마을 어르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즉석 토크쇼가 열리기도 한다. 한 편의 다큐가 한 마을의 대화를 이끌어내고, 공감과 이해를 연결짓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축제의 시작은 작았다.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지역 주민과 뜻을 모아 동학마을에 영화 한 편을 틀었던 것이 계기였다. 이후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다큐를 사랑하는 관객과 감독들이 이 마을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진심 어린 이야기와 환대를 경험한 이들은 해마다 다시 마을을 찾는다. 영화제가 아닌 ‘마을의 축제’로 자리 잡은 이유다.

 

2.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마을과 다큐가 만나는 순간


고창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는 단지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곳은 ‘보는 영화제’가 아니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마을 사람들과 관객이 함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이 축제의 본질이다. 그래서 여느 영화제보다도 더 대화가 많고, 더 뜨겁다.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특히 이 축제는 주류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이주노동자의 삶, 농민들의 생애, 기후위기에 맞선 지역 활동, 공동체 붕괴 속에서도 관계를 지켜내려는 사람들. 대도시에서는 관심받기 어려운,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다큐멘터리들이 이곳에서 상영된다. 영화관이 아닌 마을에서 이 이야기가 재생될 때, 관객은 단순한 시청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로 연결된다.

축제의 또 다른 특징은 ‘참여형 기획’이다. 주민들이 상영할 작품을 함께 선정하고, 영화 상영 장소도 함께 정한다. 젊은 청년이자 활동가인 큐레이터는 마을 어르신들과 머리를 맞대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토론하며, 때로는 상영작이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고민한다. 상영작이 마을 상황과 닮아 있는 경우엔 자연스럽게 공감이 생기고, 간혹 마을 주민의 삶 자체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한다. 그 순간 관객석에 앉은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의 박수와 웃음 속에서 뭉클한 감정을 나누게 된다.

아이들도 이 축제의 중요한 주체다. 청소년 대상 영상 워크숍이 열리고, 아이들이 직접 찍은 짧은 영상이 공식 상영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마을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창작의 현장이 된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길을 찾는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결국,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는 '작은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는 장소'다. TV나 인터넷이 아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숨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시대에 역행하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 진심에 다가간다. 이곳에서는 ‘보다’라는 행위가 곧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은 공동체를 조금씩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3. 영화제가 바꾼 마을, 일상이 축제가 되는 방법


다큐멘터리 축제가 열리는 고창 동학마을은 영화제가 열리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르다. 몇 해 전만 해도 외지인이 찾는 일이 드물었던 이곳에, 이제는 매년 수백 명의 관객이 찾아오고, 지역 청년과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하며 머물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축제는 단지 문화 행사를 넘어, 마을의 관계망을 새롭게 엮고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축제는 ‘마을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엔 ‘별 볼 일 없는 시골’이라며 스스로 낮추던 주민들이, 이제는 “우리 마을에서 영화제가 열린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스스로가 문화 주체가 되고,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진다는 사실은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존재감을 회복시킨다. 실제로 주민 중 몇몇은 이 축제를 계기로 마을 기록 작업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삶을 글이나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제 기간에는 마을 민박이나 식당, 특산품 판매에도 활기가 돈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간식이나 밥상이 상영장 앞에서 팔리고,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이 음식들이 영화 관람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주민이 만든 수공예품이나, 영화제 한정 엽서, 지역 스토리북 등은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기념품이 됐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관계의 확장’이다. 축제를 통해 외부 예술가, 다큐 감독, 청년 활동가, 기획자들이 마을과 연결된다. 이들은 일회성 방문객이 아니라, 마을을 기억하고 다시 돌아오는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된다. 이러한 관계는 축제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로 이어져, 영상 기록 작업, 마을 안내서 제작, 생애 인터뷰 아카이브 같은 지속가능한 문화 활동이 이뤄진다.

이 모든 변화는 대형 예산이나 화려한 무대 없이, 사람과 이야기, 그리고 진심 하나로 이뤄졌다. 동학마을 다큐멘터리 축제는 보여주고 있다. 마을이 곧 예술 공간이 될 수 있으며, 공동체가 예술을 통해 회복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곳에서는 매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마을이 주인공이 되는 다큐멘터리, 그 살아 있는 무대가 고창 동학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