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얀 소금밭이 놀이터가 되는 날
한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신안의 염전마을. 이곳에서는 매년 특별한 하루가 펼쳐진다. 오늘은 “소금밭에서 노는 날” – 신안 염전마을 ‘소금놀이 한마당’ 에 대해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광활한 소금밭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마을 주민들과 여행객이 함께 웃고 뛰노는 축제의 장. 이름하여 ‘소금놀이 한마당’.
‘소금은 그냥 조미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이 축제는 충격이자 감동이다. 바다에서 시작된 물방울 하나가 태양과 바람을 품어내고, 마침내 눈부신 결정이 되어 땅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장면. 그것이 이곳에선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삶이자 놀이가 된다.
소금밭은 본래 생계의 터전이었다. 갯벌을 메우고 염전을 만들며 수많은 땀방울이 배인 곳. 하지만 이제 이곳은 새로운 가능성의 무대가 되었다. ‘소금놀이 한마당’은 그 가능성의 실현이다.
축제 당일, 염전 곳곳에선 신나는 프로그램들이 이어진다. 맨발로 소금밭을 달리는 소금길 릴레이, 온몸으로 소금을 던지고 맞는 소금 뿌리기 전쟁, 그리고 넓은 소금더미 위에서 구르며 웃음꽃을 피우는 소금목욕 체험까지.
아이들에게는 마치 눈밭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은, 뛰고 구르며 창의적인 놀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천연 놀이터다. 어른들에게는 어릴 적 시골에서 뛰놀던 기억을 소환하는 감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염전이라는 공간이 주는 비일상적 감각도 흥미롭다. 소금이 반사하는 햇빛은 어쩐지 신비롭고, 맨발로 소금밭을 디디면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물보다 느린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짭짤한 공기가 폐 속 깊이 스며들 때, 몸도 마음도 자연스럽게 비워진다.
이 축제는 바로 그런 감각들을 일깨우고자 기획되었다. 단지 재미를 넘어, 땅의 성질과 바다의 흔적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자연 속에서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금은 하얗고 고요해 보이지만, 그 속엔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리고 신안 염전마을의 ‘소금놀이 한마당’은 그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쓰는 축제다. 자연의 품에서, 땀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다시 놀고 웃으며 새로운 공동체의 기억을 쌓아간다.
2. 염전의 역사와 삶을 엿보는 살아있는 체험의 장
‘소금놀이 한마당’은 단지 놀이와 즐거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축제의 또 다른 축은 염전의 역사와 삶을 배우고 이해하는 ‘살아있는 체험 교육’이다.
신안은 한국 천일염 생산의 중심지다. 넓은 갯벌과 풍부한 일조량, 바닷바람이 만든 천혜의 환경 덕분에 오래전부터 염전이 발달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손에는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는 자동화된 공정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손으로 소금을 긁어모으는 작업은 섬사람들의 일상이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이 염전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염전 도슨트 투어’가 대표적이다. 마을의 소금장인이 직접 안내하는 이 투어는, 참가자들에게 소금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수로부터 증발지, 결정지, 저장창고까지. 이 모든 과정을 실제 염전에서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인기 있는 체험 중 하나는 ‘소금 긁기 체험’. 참가자들은 긴 나무 도구(소래)를 들고, 직접 결정지 위에 엉겨붙은 소금을 긁어낸다. 이 작업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무게감도 있고, 미끄러지기 쉬운 바닥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 체험을 통해 많은 이들이 염전 노동의 강도와 소금 한 줌에 담긴 가치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라며 감탄하고, 어른들은 “예전 어머니가 염전에서 일할 때가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또한 염전 마을의 기록을 전시한 작은 사진관도 축제의 중요한 공간이다. ‘염전의 기억, 땀의 시간’이라는 제목 아래, 수십 년 전 흑백 사진부터 현재의 변화된 풍경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염전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작업복, 소금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 해질녘 소금더미 뒤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풍경 등은 단지 기록을 넘어서 감정의 파장을 일으킨다.
이처럼 ‘소금놀이 한마당’은 단지 ‘노는 자리’가 아니라, 땅과 노동의 의미를 배우고, 세대 간 기억을 공유하는 소중한 장이 된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든 염전이라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살아온 삶의 무게를 이해하게 하는 살아있는 축제. 그래서 이 마을은, 이 축제는 특별하다.
3. 섬마을 축제가 이어주는 공동체의 미래
‘소금놀이 한마당’은 단지 하루 이틀의 행사가 아니라, 마을의 일상과 미래를 바꾸는 지속 가능한 움직임이다. 신안의 많은 염전마을처럼, 이곳도 한때 공동체가 쇠락하고 인구가 줄어들며 위기를 겪었다. 젊은 세대는 도시로 떠나고, 남은 어르신들은 농사와 염전 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이 작은 축제가 시작되며 마을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축제의 핵심은 '함께 만드는 과정'에 있다. 마을 주민들은 기획에서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소금 뿌리기 구역을 정하고, 체험장소를 청소하고, 손님 맞을 밥상을 준비하는 일까지 모두 마을 사람들이 해낸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손을 보태며, 축제는 단지 이벤트가 아닌 ‘마을 전체의 연극’처럼 펼쳐진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이자 축제의 동반자다.
무엇보다 축제를 통해 생긴 경제적 순환이 마을에 큰 변화를 만들었다. 지역 특산물인 천일염, 소금 간식(소금빵, 소금과자), 수공예품 등을 직접 판매하며 주민들의 소득원이 생겼다. 축제 때 먹는 소금 백반, 소금국수 같은 메뉴는 SNS를 타고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축제를 통해 지역의 자원과 스토리를 활용한 로컬 비즈니스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교육’이다. 지역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염전 기록 프로젝트,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 생애사, 그리고 청년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영상워크숍까지. 축제는 일회성이 아니라, 마을과 외부가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마을은 다시 살아난다.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흐르고, 자부심이 자란다.
소금은 땅에 남지만, 축제는 마음에 남는다.
‘소금놀이 한마당’은 그렇게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마을의 문화이자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하얀 소금밭은 더 이상 고된 노동의 상징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뛰놀고, 이웃이 모이고, 미래가 움트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자연, 노동, 놀이,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묻는다.
"진짜 풍요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신안의 소금밭은, 하얗게 빛나는 답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