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싸이클로 다시 쓰는 삶의 이야기,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다
경남 밀양의 한적한 시골 마을, 이름도 정겨운 '외할매마을'에서는 매년 이색적인 축제가 열린다. 그 이름도 특별한 리싸이클 축제. 그리고 이 축제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바로 ‘할머니들의 마을 패션쇼’다. 오늘은 “할머니들이 기획한 마을 패션쇼” – 밀양 외할매마을 리싸이클 축제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패션쇼와 시골 마을, 그것도 할머니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외할매마을에서는 이 모든 요소들이 기적처럼 어우러진다.
낡은 옷, 쓰다 버려진 천 조각, 마을 창고에서 잠자던 커튼과 고무줄, 오래된 스카프들이 이 축제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마을 어르신들은 그 옷을 입고 런웨이에 선다.
이 행사는 단순한 패션쇼가 아니다. 재활용, 자원 순환, 환경보호 같은 거창한 주제를 ‘할머니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골에서 자라난 어르신들은 이미 일찍부터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살아온 장본인이다. 고무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묶어두고, 옷은 물려 입고 덧대 입으며 쓰임을 이어간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마을의 축제를 통해 ‘디자인’이 되고, ‘예술’이 되고, ‘스토리’로 전환된다.
리싸이클 축제를 처음 기획한 것은 바로 이 마을의 어르신들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묻는 대신,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 마을을 바꿔보자’고 말하며 모인 외할매들은, 직접 옷을 만들고 수선하며 마을 축제를 이끌었다. 마을회관은 어느새 재봉틀 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작업장이 되었고, 버려진 천은 기발한 옷감으로 재탄생했다.
그 중심에는 ‘다시 쓰는 삶’에 대한 철학이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유행이 지나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질 물건들이, 어르신들의 손을 거치면 그 자체로 기억과 정체성을 지닌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마을 축제라는 공동의 무대 위에서,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성과로 돌아온다.
외할매마을 리싸이클 축제는 단지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마을의 자산을 재활용하는 과정이다. 시골 마을의 고요한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잊혀가는 기술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 데려오는 일. 그 시작은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그 의미는 놀랍도록 크다.
2. 런웨이에 선 외할머니들, 패션은 나이와 상관없다
드디어 축제 당일, 마을 회관 앞에 임시로 마련된 패션쇼 런웨이 위에 하나둘 어르신들이 등장한다. 손수 만든 의상을 입고, 머리에 꽃장식을 달고, 고운 미소를 머금은 채 등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이날만큼은 누구도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디자이너이자 모델, 예술가이자 이야기꾼이 된다.
외할매마을의 마을 패션쇼는 단순히 옷을 입고 걷는 자리가 아니다. 각각의 옷에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할머니는 손자의 학교 체육복을 고쳐 만든 치마를 입고 나온다. 또 다른 이는 20년 전 남편과 입었던 커플 점퍼를 리폼해 가슴에 꽃무늬를 수놓은 외투로 다시 만들었다.
옷 하나하나가 추억이고, 삶이고, 사랑이다.
쇼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뛰고, 멀리서 온 관광객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때론 어색하게 걷고, 실수로 발을 헛디뎌도 모두가 웃으며 함께 박수친다. 그 순간만큼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무대가 된다.
패션쇼의 백미는 ‘공동 런웨이’ 시간이다. 어르신과 손주가 함께 걷거나, 이웃 할머니들이 팔짱을 끼고 등장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고, 관계와 관계가 엮이는 시간이다.
어떤 할머니는 “처음엔 부끄러워서 못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까 평생 이런 기회는 없을 것 같아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이 축제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노인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듦의 아름다움’과 ‘자신만의 멋’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더 이상 ‘노인은 조용해야 한다’, ‘검소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이날만큼은 누구보다 당당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주인공이 된다.
외할매마을의 할머니 패션쇼는 단지 지역 이벤트가 아니라, 나이 듦에 대한 인식 전환의 상징이자, ‘할 수 있다’는 자기 선언이다. 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세련된 메시지와 감동이,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솟아오른다.
3. 지속 가능한 마을 축제, 다시 피어나는 관계와 자존감
리싸이클 축제가 외할매마을에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단순한 화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마을 공동체의 회복과 지속 가능성이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의 집을 오가고, 기술을 나누고, 의견을 조율하며 ‘같이 하는 즐거움’을 되찾았다. 특히 여성 어르신들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며, 그동안 가려졌던 돌봄과 노동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할머니들은 단순히 모델이 아니라, 패션쇼의 의상 디자이너이자 무대 연출자다. 남는 천을 어디에 둘지, 어떤 조명을 쓸지, 의상에 어울리는 소품은 뭔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실험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도 배우고, 젊은 세대와의 협업도 늘어난다.
마을에 살던 청년들이 돌아오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가 무대에 선다는데 안 올 수가 없죠.” “이제 이런 마을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이러한 작은 흐름이 결국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마을 외부와 연결되는 ‘오픈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하거나, 친환경 브랜드와 연계한 상품 개발 등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변화는 자존감의 회복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축제를 계기로 자신을 ‘멋지다’, ‘할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돌봄과 희생의 역할에 머물렀던 여성 어르신들이, 마을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고, 기획에 참여하며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외할매마을의 리싸이클 축제는 단지 연례행사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되었다. 마을 회관은 여전히 작업장이며, 아이들과 함께 만드는 리폼 수업은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손자 손녀와 함께 옷을 만들고, 젊은 마을 청년들이 영상 기록을 하며 또 다른 기억을 만든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엔 바로 ‘마을이 가진 힘’, 그리고 ‘할머니들’이 있다. 버려진 옷처럼 여겨졌던 세대가, 가장 빛나는 주인공으로 마을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
멋은 도시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창조는 젊음만의 특권이 아니다.
밀양 외할매마을이 보여주는 이 멋진 진실은, 앞으로도 많은 마을에 영감을 줄 것이다.